이승헌 총장 뉴스

[이승헌 단학] 일지이승헌 총장, 뇌교육으로 미국에 희망을 전하다.

희망나라 2012. 8. 3. 01:49

일지이승헌 총장,

뇌교육으로 미국에 희망을 전하다.

 

 

미국에서 영글어가는 홍익의 꿈 단요가건강센터, 미국의 건강문화기업으로 우뚝 서다 1995년 이승헌 총장은 당시 단월드의 전신인 단학선원의 경영 일체를 제자들에게 넘기고 거의 혼자나 다름없는 몸으로 미국으로 떠나왔다. 그에게는 미국에서 이루어야 할 꿈이 있었다. 아니, 미국에서 이루어야 할 꿈이라기보다, 애초부터 하나의 큰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의 실현을 위한 새로운 시작이 미국에서 이루어져야 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의 꿈은 ‘온 인류가 건강과 행복과 평화를 누리며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역사책 속의 죽은 언어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에서 펄펄 살아 뛰는 삶의 철학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가 진지하게 이런 꿈을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에 따라 반응이 천차만별이다. 마치 미인대회 참가자들이 한결같이 “저의 소망은 인류 평화예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의례적인 홍보용 멘트려니 생각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 참, 꿈 한번 거창하십니다.’ 하며 황당하다는 듯이 웃어넘기는 사람도 있다. 아주 드문 수의 사람들이 그와 똑같은 진지함으로 그의 말에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웃을지언정, 그런 세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누가 있으랴. 정작 이상한 것은, 그렇게 모두가 바라면서도, 그것을 개인의 꿈으로 품는 사람이 드물고, 나아가 실행해 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는 사실이다. 이승헌 총장은 많은 이들이 마음 속으로만 바라는 그런 세상을 전세계인과 함께 만들어 보겠다는 홍익의 꿈을 안고 미국에 왔다.

 
당시 미국에는 몇 해 전에 개설한 단센터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한 교포 사업가와의 인연으로 1991년에 개설된 센터였다. 한국 방문중에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그 교포사업가를 친구가 다짜고짜로 끌고 간 곳이 단학선원이었다. 단학선원에서 딱 한 시간 수련을 하고, 이승헌 총장의 저서를 있는 대로 사서는 다음날 필라델피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는, 이승헌 총장의 철학에 반해 이총장과 그의 제자 한 명을 필라델피아로 초청했다.

 
그 교포사업가의 후원으로 강연회에 이어 센터까지 개설한 이총장은 함께 간 사범에게 미국 최초의 단센터를 맡기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필라델피아에서 LA로, 뉴저지 한인타운으로 자리를 옮긴 센터는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힘겹게 운영되고 있었다.

 
이승헌 총장이 직접 미국개척의 길을 나섰던1995년 여름, 당시 한국에는 이미 50여 개의 단학선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때까지 이루어놓은 기반에 만족하며, 한국에서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새로운 도전의 길을 선택했다. 돌아보면 그의 인생은 길이 없는 길을 만들어온 여정이었다. 1980년 이승헌 총장은 안양의 충현탑 공원에서 중풍환자 한 사람에게 무료로 건강법을 가르치면서 단학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으며, 5년 만인 1985년, 서울 신사동에 첫 단학선원을 열었다.

 


그 후 1년 만에 12개의 센터가 전국 주요도시에 개설되었으며,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선경(SK)의 고 최종현 회장이 이총장에게 개인지도를 받은 것을 계기로, 기업교육과 공무원 교육, 군교육에 단학수련이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던 15년의 세월이 그에게 ‘성공’의 월계관을 막 씌워주려 하던 즈음, 그는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또 다시 길 없는 길을 열겠다고 태평양을 건넜다.


그가 첫 발을 내디딘 미국 땅, JFK 공항에서 정착금 5천불과 옷가지가 들어 있는 가방을 통째로 소매치기 당한 일은, 어쩌면 언제나 무에서 새로운 창조를 일구어냈던 그의 인생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이승헌 총장은 회원의 집에 기숙하기도 하고, 어린 제자와 센터 바닥에서 잠을 자기도 하면서 초기 미국개척기의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고민끝에 한국 교민사회만을 상대해서는 단센터가 성공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단학과 뇌교육을 미국 현지인 사회에 뿌리내리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로부터 다시 15년이 지난 지금, 미주 단요가 건강센터는 1991년에 처음 필라델피아에 함께 왔던 제자인 전승배 대표이사가 120여 개의 센터를 운영하며, 기업체, 학교, 관공서 등에 건강 및 웰빙 프로그램을 교육하는 건강문화기업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오늘도 미국 전역의 단요가 건강센터에서는 수천명의 미국인들이 서로에게 “반갑습니다.”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며, 이승헌 총장의 “홍익의 꿈”을 함께 나누고 있다.

 

 

지구시민정신으로 다시 태어난 한국의 홍익인간정신 2000년 유엔에서의 평화의 기도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 인류가 두번째로 맞은 밀레니엄, 지난 2000년에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화두 중의 하나는 “평화”였다.
그해 8월, 평화로운 새천년에 대한 많은 이들의 염원과 바람은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정신지도자와 종교지도자들까지도 유엔 총회장으로 불러모았다. 8월 28일부터 31일까지 전세계 영성지도자 1천 3백여 명이 유엔에 모여 ‘밀레니엄 종교 및 영성 세계평화회의’를 열었다.

 

이승헌 총장은 첫날 개막식 때 아시아를 대표하여 “평화의 기도”를 낭송하였다. 세계 각국에서 초청된 대표들과 함께 유엔 본회의장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그의 가슴에는 기쁨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유엔이 기억하는 한국은 위대한 철학과 사상을 가진 나라도,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며 88올림픽을 치른 나라도 아니다.

 

50년 전 자신들이 참전했던 한국전쟁의 나라, 남북이 아직까지 대치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그러하기에 개막식 때 평화의 기도를 올리는 그의 마음이 더욱 간절하고 남다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승헌 총장의 기도는 ‘나는 이 평화의 기도를 기독교의 신에게 드리는 것도 아니며, 불교의 신에게 드리는 것도 아니며, 회교의 신에게 드리는 것도 아니며, 유태교의 신에게 드리는 것도 아니라, 모든 인류의 신에게 드립니다.’로 시작해서, ‘나는 이 평화의 기도를 모든 지구인들과 함께 지구의 평화를 위해 드립니다’로 끝났다. 그 기도의 마지막을 “홍익인간 이화세계”로 마무리하는 그의 목소리에 벅찬 감회가 묻어났다.


이승헌 총장이 20년 동안 품고 살아온 그 여덟 자의 힘. 유엔본회의장 중앙연단에 서서, 전세계 정신지도자들을 향해 선언하듯 한 자 한 자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발음하던 이승헌 총장의 감회가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승헌 총장은 이 “평화의 기도”를 통해 한국의 홍익인간 정신이 전체 인류가 귀감을 삼을 만한 평화의 철학이요, 조화의 사상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렸다. 또한 이 홍익인간 정신을 국적, 인종, 종교, 문화적 차이를 떠나 모든 인류는 지구인이며 지구사랑 인간사랑을 통해 새로운 지구문명을 창조해야 한다는 지구시민정신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유엔 세계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유엔의 간부들과 전세계의 영성 지도자들을 만나면서 유엔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게 되었다. 유엔은 국가이기주의를 초월하여 지구와 인류의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해 만든 초국가정치기구이다. 그러나 인류평화의 원대한 이상을 지닌 유엔이 그 꿈을 실현하기에는 힘이 충분치 않아보였다. 그때 이승헌 총장은 유엔이 더 강력한 국제평화기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뇌교육을 연구개발한 한국뇌과학연구원을 유엔자문기구로 등록한 것도, 국제뇌교육협회를 설립하여 100개국에 뇌교육을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모두 유엔의 지구환경과 인류평화를 위한 노력을 돕겠다는 그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승헌 총장은 첫날 개막식 때 아시아를 대표하여 “평화의 기도”를 낭송하였다. 세계 각국에서 초청된 대표들과 함께 유엔 본회의장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그의 가슴에는 기쁨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유엔이 기억하는 한국은 위대2007년 7월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만남은 그로 하여금 더욱 현실적인 유엔 후원 방안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본인의 임기 동안 지구온난화 문제해결을 최대의 현안으로 삼고 집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승헌 총장은 현재의 지구환경문제는 인간성 상실로 인한 과도한 물질만능주의의 결과라고 보고, 뇌교육을 통해 인간성회복, 지구시민양성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반기문 총장과 유엔의 활동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승헌 총장의 인류평화 프로젝트는 구체적인 숫자를 가지고 있다. 60억의 인류 가운데 민족과 국가와 종교 중심의 의식이 아니라, 지구와 인간과 평화 중심의 의식을 가진 사람이1억이 되고, 그들이 자신의 커뮤니티를 변화시키는 리더가 되고 유엔의 지구평화를 위한 노력을 후원한다면, 인류는 평화의 정상에 훨씬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자 믿음이다.
평화의 기도를 낭송하던 9년 전, 이승헌 총장은 게스트로서 유엔과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2008년 부터는 호스트가 되어 유엔에서 국제뇌교육컨퍼런스와 인류의 정신건강을 위한 뇌교육 세미나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하며, 유엔의 많은 인사들과 교류하고 있다.


홍익인간은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그저 이념에 불과한 홍익인간을, 이승헌 총장은 삶의 철학으로, 인류의 평화철학으로 발전시키고 알리기 위해 지난 30년 동안 혼신의 힘을 기울여왔다.


진정한 홍익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뇌교육을 개발했으며, 21세기 홍익인간상으로 인간사랑 지구사랑을 실천하는 지구시민을 제시하고, 지구시민운동을 범인류적인 차원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